'몽중인' 과 'California Dream' 이 흐르는 영화 '중경삼림'
명성에 걸맞게 익숙한 제목에 봐야지 봐야지 다짐을 거듭하다 드디어 보게 되었다
사전 정보도 없이 봤던터라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엮여 있는 영화인지도 모른 채 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금성무와 임청하
만우절, 애인으로부터 거짓말같은 이별 통보를 받은 뒤, 그녀가 좋아하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유통기한이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까지인 것으로만 찾는 금성무.
서른 개의 통조림을 다 샀을 때에도 애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녀를 포기하기로 다짐한다.
통조림 서른 개를 다 모은 금성무의 생일 날까지 애인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전화를 걸자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금성무는 모아놓은 파인애플 통조림 서른 개를 모조리 먹어버리고는 바로 향한다.
사랑에도 감정에도 기한이 있다며 회의감에 빠져든 금성무는 바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으며,
마약 밀매업자. 자신을 배신한 인도인을 죽이고 돌아 온 임청하를 만나게 된다.
금발의 가발에 언제 비가 올지 언제 화창한 날이 될지 모른다며
맑은 날씨에도 언제나 레인코트, 깜깜한 밤에도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알쏭달쏭한 모습의 임청하
둘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쉬고 싶다는 임청하의 말에 호텔로 향하게 된다.
전혀 다른 의미 없이 정말 휴식을 원하던 임청하, 그리고 그녀의 피곤을 배려한 금성무는
자고 있는 그녀의 구두를 벗겨 깨끗이 닦아놓고는 자리를 뜨게 된다.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운동장을 질주한 뒤 이제 아무도 자신을 찾아주는 이가 없을거라고 생각한 금성무는
삐삐를 운동장에 버려두고 떠나려하지만 곧이어 울리는 여자 동료의 생일 축하 메시지에 큰 감동을 받는다.
투박하고 바보같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 할 준비가 된 것으로 보였다.
한 편, 잠에서 깬 임청하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옛 애인의 바로 찾아가 그를 총으로 쏴 죽이고
마침내 가발을 벗어던지며 유유히 떠나게 된다.
옛 애인이 다른 여자에게도 금발의 가발을 씌운 채 애정행각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어떠한 상징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마지막 임청하가 떠나는 장면이 그로부터의 해방과 모든 미련을 남김 없이 털어내는 장면으로 보인다.
여러 해석을 찾아보니 당시 홍콩의 어두운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의미들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양조위와 왕페이
왕페이가 일하고 있는 가게로 매일 같이 애인이 먹을 음식을 사러 오는 경찰 양조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애인으로부터 실연을 당하게 되고,
그녀와 함께 지냈던 자신의 집에 있는 물건들에 위로를 건넨다.
울고 있는 수건, 홀쭉해진 비누 등등 무생물들에 건네는 그의 말들이 스스로에게 전하는 위로로 느껴졌다.
왕페이가 일하고 있는 가게로 찾아 온 양조위의 전 애인
완전한 이별을 전하는 편지와 함께 더 이상 찾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그의 집 열쇠도 동봉하여
양조위에게 전해주길 부탁하며 떠난다.
양조위를 짝사랑하는 왕페이는 이후 양조위의 집을 몰래 드나들며 식탁보를 바꾸고,
헌 수건들을 새 수건으로 교체하고, 빈 어항에 금붕어를 채워넣으며 옛 애인의 흔적을 하나 둘 지워나간다.
나는 보는 내내 너무 조마조마했는데 OST가 너무나 명랑하게 흘러나오더라 ..
실연의 상처에 집 안의 변화도 인지하지 못하던 양조위가 누군가 자신의 집을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혹시 옛 애인이 돌아 온 것은 아닐까 하며 낮에 집으로 향하게 되고 둘은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걱정했던 것에 비해 정말 아무 일 없이 상황이 지나갔다.
양조위는 왕페이와 사랑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왕페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게 된다.
저녁 8시 캘리포니아
동네의 바 이름이였지만 왕페이는 정말로 캘리포니아로 떠나게 된다.
사실 7시 15분에 그녀는 바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였지만 무언가 자신의 꿈이 깨질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일까 자리를 뜨고 만다.
양조위는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그녀의 가게 사장이 전하는 얘기와 편지를 건네 받는다.
또 다시 버려졌다는 느낌에 더군다나 이전 애인과 똑같은 방식의 편지.
양조위는 그녀의 편지를 읽지 않고 빗 속에 내버리지만 이내 다시 집어들게 된다.
편지는 바로 왕페이가 직접 그려놓은 종착지가 정해져있지 않은 일년 뒤 날짜의 항공권.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홍콩으로 돌아 온 왕페이는 자신이 일하던 매장으로 향하게 되고
그 곳에서 경찰을 그만 둔 후, 그 매장을 사들여 자신을 기다린듯 왕페이가 선물 한 옷을 입고 있는 양조위를 다시 만나게 된다.
항공권의 종착지를 다시 그려달라는 양조위에게 왕페이는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묻고,
양조위는 '어디든 당신 원하는 곳으로' 라고 답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실연의 아픔을 겪는 경찰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상반 된 분위기 때문인지 두 번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였고 나도 그렇다.
간단히 말하면 실연 당한 사람들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 상처를 치유받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간다는 내용이지만
왕가위 감독의 독특한 카메라 기법 말고도 영화의 분위기와 감성을 제대로 느끼려면
몇 번 거듭하여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미와 모두가 강조하는 유명한 OST는 영화의 여운이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 머릿 속에 맴돈다.
지금 계절과 정말 잘 어울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